장재식 전 산업자원부 장관 별세
핵심 요약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경제 관료이자 3선 국회의원이었던 장재식 전 산업자원부 장관이 향년 91세로 별세했습니다. 고인은 외환위기 발생 전 경제 위기를 미리 경고했던 선견지명을 가진 인물로 평가받으며, 호남의 명망 높은 독립운동가 가문 출신으로서 정·재계와 학계에 큰 발자취를 남겼습니다.
상세 내용
1. 독립운동가 가문의 전통과 성장 과정
장재식 전 장관은 전남 광주에서 태어났으며, 집안 전체가 항일 독립운동에 헌신한 호남의 명문가 출신입니다. 임시정부 외무부장을 지낸 큰아버지 장병준 선생을 비롯해 부친 장병상 선생, 작은아버지 장홍염 선생 등이 모두 항일 운동과 광복군 활동에 참여하며 조국의 독립을 위해 힘썼습니다.
고인은 광주고와 서울대 법대를 졸업한 엘리트였습니다. 중학생 시절인 1950년, 16세의 어린 나이에 학도병으로 입대하여 낙동강 전투 등에 참전하며 격동의 현대사를 몸소 겪었습니다. 이후 1956년 제7회 고등고시 행정과에 합격하며 본격적인 공직 생활의 길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2. 정통 경제 관료로서의 행보와 정치 입문
고인은 국세청 차장과 한국주택은행장 등을 역임하며 세무와 금융 분야에서 전문성을 쌓은 정통 경제 관료였습니다. 또한 서울대학교 법대 강단에 서며 후학 양성에도 힘썼습니다.
정계에 입문한 것은 1992년 제14대 총선 때였습니다. 민주당 전국구 의원으로 당선된 이후, 서울 서대문 지역구에서 15대와 16대 총선에 연속 당선되며 3선 국회의원의 반열에 올랐습니다. 특히 김대중 전 대통령의 두터운 신임을 받았던 'DJ맨'으로 불리며, 김대중 정부 시절인 2001년부터 2002년까지 산업자원부 장관을 맡아 국가 산업 정책을 총괄했습니다.
3. 외환위기 경고와 경제 전문가로서의 업적
장재식 전 장관은 1997년 IMF 외환위기가 닥치기 약 1년 전부터 경제 위기의 위험성을 강력히 경고했던 인물입니다. 1996년 국회 국정감사 당시, 그는 엔저 현상과 원화 고평가, 수출 경쟁력 약화, 외채 부담 등을 근거로 외환위기 가능성을 공개적으로 지적했습니다. 당시 금리 인하와 환율 인상의 필요성을 주장했으나, 물가 상승과 기업의 우려 등으로 인해 그의 경고는 즉각 수용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위기가 현실화된 이후 그의 지적은 재조명되었습니다. 그는 1999년 국회 IMF 환란조사특위 위원장을 맡아 위기의 원인을 규명하고 경제 정책을 점검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또한 세제 분야에서도 근로소득 분리 과세 등 합리적인 세법 개정을 위해 노력한 전문가였습니다.
4. 학계에 남긴 유산과 유족
고인의 학문적 자질은 자녀들에게도 이어졌습니다. 장남은 세계적인 경제학자로 알려진 장하준 런던대 교수이며, 차남은 과학철학 분야의 권위자인 장하석 케임브리지대 석좌교수입니다. 이 외에도 장하진 전 여성가족부 장관, 장하성 전 청와대 정책실장 등 조카들이 정·관계와 학계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습니다. 유족으로는 부인 최우숙 씨와 2남 1녀의 자녀, 사위와 며느리 등이 있습니다.
정리
장재식 전 장관은 독립운동가의 후손으로서 올바른 역사관을 바탕으로 성장하였으며, 경제 관료와 정치인으로서 국가 경제의 기틀을 다지는 데 헌신했습니다. 비록 외환위기 경고가 당시에 모두 받아들여지지는 않았으나, 그의 선견지명과 전문성은 대한민국 경제사에 중요한 교훈을 남겼습니다. 그는 공직과 정계, 학계를 아우르며 국가 발전에 기여한 진정한 엘리트이자 경제 전문가로 기억될 것입니다.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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