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호용 전 국방부 장관의 생애와 역사적 쟁점
핵심 요약
신군부 핵심 인물 중 마지막 생존자였던 정호용 전 국방부 장관이 향년 94세로 사망했습니다. 그는 12·12 군사반란과 5·18 민주화운동 당시 유혈 진압에 관여한 핵심 인물로 지목되어 왔습니다. 생전 끝까지 자신의 책임을 부인해 온 그의 죽음으로 인해, 5·18 당시 집단발포 명령 체계와 암매장 의혹 등 미완의 진실을 밝힐 결정적 증언의 기회는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상세 내용
1. 신군부의 핵심 인물로서의 행보
정호용은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과 육군사관학교 11기 동기로, 신군부 정권의 요직을 두루 거친 인물입니다. 1979년 12·12 군사반란 직후 특전사령관에 임명되었으며, 이후 육군참모총장, 내무부 장관, 국방부 장관을 지냈습니다. 또한 두 차례 국회의원을 역임하며 정권의 실세로서 막강한 권력을 누렸습니다. 그는 신군부 핵심 5인 중 마지막까지 생존해 있었으나, 그의 죽음으로 이른바 '신군부 핵심 5인'은 모두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2. 5·18 진압 작전과 책임 논란
정 전 장관은 1980년 5월 광주에 투입된 공수부대를 관할하는 특전사령관으로서 유혈 진압의 직접적인 책임자라는 비판을 받아왔습니다. 그는 생전 공식적인 작전 지휘 계통에 포함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자신에게 지휘권이 없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군 기록에 따르면 그는 5월 21일 집단발포 전후로 최소 네 차례 이상 광주를 방문한 사실이 확인되었습니다. 특히 5월 27일 도청 재진입 작전 당시, 작전 준비를 위해 섬광 수류탄 불출을 요구하거나 항공 사진을 제공하는 등 실질적인 역할을 했다는 정황이 드러나며 그의 주장은 끊임없이 반박되었습니다.
3. 사법적 단죄와 미완의 진실
1997년 대법원은 그가 옛 전남도청 진입 작전을 지원한 사실 등을 인정하여 징역 7년을 확정했습니다. 그는 특별사면을 받았으나, 이후에도 자신의 책임을 부인하는 입장을 고수했습니다. 5·18 진상규명조사위원회는 그가 공수부대 운용과 비공식 지휘체계에 관여했을 가능성을 높게 보았고, 내란목적살인 혐의 등으로 고발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가 미국 출국 등을 이유로 대면 조사에 응하지 않은 상태에서 사망함에 따라, 발포 명령의 구체적인 경로와 암매장 의혹 등을 풀 수 있는 핵심 증언은 영원히 묻히게 되었습니다.
정리
정호용의 죽음은 5·18 민주화운동의 진실을 규명하려는 노력에 있어 커다란 역사적 단절을 의미합니다. 가해 당사자의 직접적인 고백과 사죄를 기다려온 피해자와 유가족들에게는 또 다른 상처가 되었습니다. 비록 결정적인 증언의 기회는 사라졌지만, 남아있는 군 기록과 객관적 자료를 바탕으로 한 역사적 단죄와 진상 규명 작업은 앞으로도 지속되어야 할 과제로 남았습니다.
출처
- 네이버—이름 감춘 정호용의 마지막 길…침묵으로 끝난 '신군부 5인'의 씁쓸한 퇴...
- 네이버—“단죄되지 않은 5·18 학살, 또 다른 내란을 불렀다” [오월길 이야기...
- 네이버—[천왕봉]역사 속에 사라진 신군부 핵심 5인
- 네이버—정호용 전 국방장관 사망…오월단체 "5·18 진상규명 계속돼야"
- 네이버—[무등의 아침] “정호용, 5·18 진실에 입 닫은 채 사망…역사적 단죄 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