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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남 고다산성 발굴 조사 결과와 역사적 가치

핵심 요약

전남 해남군 현산면에 위치한 고다산성에서 통일신라시대의 정치와 행정을 상징하는 중요한 유물들이 대거 발견되었습니다. 이번 발굴을 통해 고다산성은 단순한 군사 방어 시설을 넘어, 당시 지방 통치의 중심지였던 치소성이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게 나타났습니다. 마한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오랜 기간 사용된 흔적이 확인되어 역사적 가치가 매우 높습니다.

상세 내용

1. 주요 출토 유물과 역사적 의미

이번 발굴 조사에서는 약 100여 점의 유물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가장 주목받는 유물은 '왕(王)'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청동 인장입니다. 이는 당시 공공기관에서 행정문서를 처리할 때 사용하던 관인으로 추정되어, 이곳이 행정 업무를 수행하던 곳임을 뒷받침합니다. 또한 중국 당나라 양식의 금동 허리띠가 발견되었는데, 이는 당시 이곳에 거주했던 인물의 신분이 매우 높았음을 보여주는 위세품입니다.

특히 '새금관(塞琴官)'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기와는 매우 결정적인 증거입니다. '새금'은 백제시대의 행정 구역을 나타내는 지명으로 추정되며, 이러한 글자가 새겨진 기와는 주로 관청과 같은 공공시설에 사용되었습니다. 이러한 유물들은 고다산성이 신라 중앙 정부와 연계된 고위 지방관아였거나, 이 일대를 다스리던 지방 통치의 거점이었음을 강력하게 시사합니다.

2. 성곽의 구조와 축조 특징

고다산성은 산 정상부를 둘러싸는 테뫼식 석축산성의 형태를 띠고 있습니다. 성곽의 구조를 살펴보면 통일신라시대 성곽의 전형적인 특징이 잘 나타납니다. 북쪽 성벽의 경우 외부를 들여쌓기 방식으로 쌓았으며, 내부 기초는 판축(板築) 공법을 사용하여 다진 뒤 수직으로 쌓아 올린 정교한 구조를 보여줍니다.

동쪽 문지(門址)의 경우 통일신라시대에 처음 설치된 이후, 고려와 조선시대를 거치면서 계단식으로 보수된 흔적이 발견되었습니다. 이는 성곽이 한 시기에만 머물지 않고 시대의 변화에 따라 지속적으로 관리되고 개보수되었음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구조적 특징은 고다산성이 지리적 이점을 활용해 오랜 기간 전략적 요충지로 기능했음을 증명합니다.

3. 시대별 이용 양상과 지리적 중요성

발굴 결과, 고다산성에서는 마한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이어지는 세 개의 뚜렷한 문화층이 확인되었습니다. 성벽의 하층부에서는 마한시대의 유구와 유물이 발견되었고, 통일신라시대에는 본격적인 석축산성이 축조되어 치소성으로 운영되었습니다. 이후 산성이 폐성된 시기에는 담장을 갖춘 조선시대의 건축물이 들어선 흔적이 나타나, 시대별로 공간의 용도가 변화해 왔음을 알 수 있습니다.

고다산성이 위치한 현산면 일대는 백제시대의 새금현, 통일신라시대의 침명현, 고려시대의 해남현 등 각 시대의 행정 중심지(치소)가 있었던 곳으로 비정됩니다. 고다산성은 서남해안의 해상 교통로와 육상 접근로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위치에 있어, 교통을 통제하고 방어하는 동시에 지방 행정을 수행하기에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정리

고다산성은 마한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긴 세월 동안 교통과 방어의 핵심 요충지 역할을 해왔습니다. 특히 이번 발굴을 통해 통일신라시대의 고위 지방관아가 존재했을 가능성이 입증되면서, 단순한 성곽 이상의 역사적 위상을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해남군은 이번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고다산성의 역사적 가치를 보존하기 위해 국가유산 지정을 추진할 계획입니다.

출처

  • 네이버—방어용 산성인 줄 알았는데 '왕' 도장 나왔다
  • 네이버—[네트워크 현장] 명현관 “대통령에 균형발전 지원 건의” 외
  • 네이버—'해남 고다산성' 청동인장·금동허리띠 등 다수 유물발굴
  • 네이버—해남군, 고다산성 왕(王)명 청동인장 금동허리띠 등 유물 출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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